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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학교 투어

국립 창원대학교 주변환경과 명소 알아봐요

by 해바농 2022.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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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대학교는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퇴촌동에 위치한 명실상부한 국립대입니다. 좋은 경치와 드넓은 시야로 유명한데요, 오늘은 창원대의 주변 환경은 어떨지 또 명소는 어디가 있는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 주변환경

 

  학교 주변은 크게 정문, 서문, 동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다수는 정문을 대학로라고 부릅니다. 정문 주변은 식당이나 주거시설로 볼 수 있습니다. 또 학교 정문 앞 창원천 주변에는 술집과 유흥시설, 카페 등이 모여 있지만 대학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에는 PC방이 15개 가까이 있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등 다양한 이유로 지금은 줄어들고 있으며, 카페가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창원에서 가장 번화가인 상남동과 창원 가로수길, 용지못 등이 있는 데다 정문 바로 앞에 있는 창원천으로 대학로의 흐름이 끊기고 도로가 좁고 주변 주거지가 모두 단독주택이어서 대학생을 제외하고는 유동인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창원 시민들도 이 근처로 올 이유가 없다. 과거 우영광 장은 부서 행사, 장외 파티, 회의, 만찬 등이 열리는 장소였습니다.

  정문 바로 앞에 넓은 공터가 있는데, 공원이나 상가 건설 여부와 관련한 각종 마찰로 대학로와 공터 사이에 초대형 담장이 5년 넘게 설치돼 있습니다. 이로 인해 대학로 주변 학생과 주민들의 민원이 쇄도하고 있지만 언제 없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공대 뒤편에는 창원 중앙역(창원대)이 있습니다. 동문에는 창원중앙역 개발사업으로 인해 인공호수와 대형 오피스텔, 사무단지 등이 준공되었으며, 한양대학교 한마음 창원병원이 준공되어 2021년 3월 2일 개원하였습니다. 아직까지는 대학로라고 부를 만한 술집이 거의 없고, 식당 가격도 비싸고 시내버스 노선의 직선성도 좋지 않아 이곳인지 아닌지 모르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인근에는 경남도청, 경남지방경찰청, 경남도의회 등 정부 청사와 중앙대로 입주기업 직원들의 수요가 있습니다. 모든 건물이 새 건물이라 정문에 비해 매우 쾌적합니다.

  서문은 기숙사 방향으로 창원 국제사격장과 경남대표도서관이 위치합니다. 단독주택과 원룸촌으로 다른 유흥시설은 없습니다.

  북문에는 자동차 전용도로인 해원로로 가는 길과 연결됩니다. 이로 인해 출퇴근 시간대에 해원로를 드나드는 차량들로 인해 캠퍼스 전체가 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때 통행료 부과 등 외부 차량 접근을 억제하려는 취지였지만 국민 세금으로 보조금을 받는 국립대라는 점과 지역사회의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학교 측은 승용차와 승합차뿐 아니라 트럭까지 교정을 누비던 중 과속으로 사고가 나자 내리막길에서 과속방지턱을 높이고 차량 수를 늘렸습니다. 또한 캠퍼스 내 교차로를 원형 교차로로 교체하고, 대학본부에서 학생들이 많이 지나는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직선도로는 높이를 대폭 높여 곡선도로로 만들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곡선도로는 자전거도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사림동 주택가 서문 출입구를 철거하는 등 기숙사생들의 안전 증진에도 힘썼습니다.

  한동안 과속방지턱과 서문 출입구 차단 등으로 지역 주민들이 테러 수준의 민원을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교육시설이라는 점과 사고 예방에 대한 학교의 확고한 의지로 인해 바뀌지 않았습니다.

 

 

 

 

 2. 명소 (산애산)

 

  사림관 건너편에는 7동 공동실험실습장과 81동 산학협력관 사이에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하나 더 있어 조금만 올라가면 됩니다. 보면 막걸리, 파전, 칼국수를 파는 막걸릿집이 보입니다. 

  와룡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 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1. 학교 뒷산, 즉 와룡이 있는 산의 지형은 용이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와룡이 바닥에 용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2. 첫 번째 주인이 가게 옆에 목줄을 매고 키운 강아지의 이름은 와룡입니다.

  와룡의 첫 번째 주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와룡은 원래 노부부가 살던 산집이었으나 사림동으로 터를 옮기기로 결정되면서 이 일대 땅이 대규모 국유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부부는 끝까지 땅을 내놓지 않았고, 결국 부지를 제외하고는 창원대가 들어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는 심지어 산속의 집에 전기와 수도를 끊었습니다. 노부부는 이에 반발해 소떼를 몰고 정문 앞에서 최소한의 생존권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고 결국 가파른 길을 포기했습니다. 와룡은 이렇게 태어났다고 합니다.

  탁 트인 산집은 원래 산등성이 뒤편 화전에 살다가 수도와 전기가 모두 끊기면서 생활수단을 잃었습니다. 결국 노부부는 생계유지를 위해 국밥집을 차렸습니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뿐만 아니라 인근 도로에서 올라오는 학생들도 주 고객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등산로가 바뀌고 등산객이 사라지면서 손님이 줄었고, 와룡은 학생 중심의 고객층을 차지했지만 국밥 메뉴를 없애고 파전과 막걸리로 메뉴를 바꿔 대학가와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와룡에는 아직도 전기와 수도가 없고, 오후 3~4시부터 밤까지 막걸리를 마실 때 불이 켜지는 이유는 발전기 전력으로 전기를 켜기 때문입니다.

  메뉴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걸리, 파전, 칼국수만 먹습니다. 교수들이 종종 그들의 학생들과 함께 방문하는 것 같습니다. 봄에는 주변에 벚꽃이 피어서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합니다.

  또한 이례적으로, 서빙에 대한 대가를 받습니다. 우선 서비스료를 받고 직접 돈을 받으면 돌려줄 수 있는 쿠폰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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